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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양요가 있던 그해,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했다. 1892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의 부설 도서관이었던 ‘외규장각’. 지금으로 보면 정부 기록 보존소이자 국립․왕립도서관이었던 규장각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외규장각에 프랑스군이 불을 질렀고, 일부 서적과 은괴 등을 약탈해갔다. 그렇게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의 일부는 불탔고, 일부는 강화도가 아닌, 프랑스로 넘어가고 말았다.
끄떡없었다.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75년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알다시피 외규장각 도서 반환 소송을 프랑스 정부 상대로 진행하고 있어요. 문화재 환수운동이죠.”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이 답을 했다. 되물었다. 수많은 약탈 문화재 가운데 왜 외규장각 도서인지, 왜 프랑스 정부였는지 말이다.
헌데 황 소장은 속 시원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일단 ‘문화재 환수운동’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문화재 환수운동이 시민들한테는 자극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문화재 환수운동을 하는 이유는 100년 전, 150년 전 있었던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산물을 정리하는 주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유네스코에서는 문화재는 원래 생산한 지역에서 연구, 관람, 문화재를 활용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내는 게 문화재가 가진 특수성이라 설명했어요. 그것에 문화재의 고유한 특성이라 했죠. 그런데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중 일부는 한국 것이라 표기되어 있지도 못할 정도로 왜곡이 심각합니다.”
그랬다. 황 소장의 말처럼 많은 유물들이 살금살금 한국을 빠져나갔다. 그 옛날 약탈당한 것은 물론, 거래에 의해 은밀히 빠져 나간 문화재도 꽤 된다고 한다.
“일제시대 참 많이 빼앗겼죠. 프랑스에도 많은 유물이 나갔어요. 그리고 일본 재벌 그룹이 그렇게 빼낸 문화재를 미국에게 로비나 전리품으로 상납하면서 미국에도 꽤 많은 우리의 문화재가 많아요.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으니까 책류가 많았는데, 결국 일본에게 빼앗긴 문화재가 미군에게 건넸고, 그것들이 스탠포드나 예일대에 기증된 것이죠. ‘위대한 유산 74434’를 기억하나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문화재 환수 운동을 진행했죠. 돌아오지 못한 우리의 문화재 수가 74,434개. 물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많아요.”
하지만 빼앗겼으니 되찾아오겠다는 단순한 심보의 문제는 아니다. 문화재 환수 운동이 갖는 의미, 유네스코도 지적했다던 문화재의 문화적 가치에 주목하면서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배짱 좋은 도전은 ‘74434’를 통해 얻은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를 되찾아 온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74434’를 촬영하면서 당시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를 되찾기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국민모금을 진행하였어요. 그리고 그 모금을 통해 공신교서를 되찾아 왔죠. 그래서 국립박물관에 기증했어요. 환수를 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3~4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공신교서를 보면서. ‘엄마 내꺼야. 엄마 나도 여기 3천원 냈어.’ 속으로 그랬어요. ‘그래 너의 유물이다’라고요.”
문화재 환수운동에 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일본으로 유출된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를 되찾아 온 것도 모자라 이제는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정도로 힘을 북돋아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1차 소송에서는 유감스럽게도 패소하였다. 프랑스 법원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국가재산”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법원은 프랑스 정부가 외규장각 문서를 취득한 과정에 대해서는 약탈임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그래서 다시 부딪힌다고 했다.
“항소하고 나면 결과는 아무래도 2~3년은 걸릴 것 같아요. 그럼에도 소송을 왜 계속 하냐고요? 약탈 문화재에 대해서 프랑스가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프랑스가 보이는 외교적 결례에 대해 시민의 힘으로 부딪혀볼 생각이에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황 소장은 문화재가 어려운 무엇, 고루한 옛것이 아니라 문화적 의미와 교육적 가치로 다시 평가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재가 어려운 걸로 아는 인식을 깨야해요. 그래서 문화재는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소중한 추억을 담은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걸 보존하지 않나요.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 거죠. 자기에서 가족, 이웃, 마을, 커뮤니티 등으로 소중한 추억과 물건, 혹은 놀이가 확장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연속만 된다면 문화재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거죠. 어렵고 골치 아픈 게 아니에요.”
그래서 황소장은 박물관에서 자신의 유물을 하나씩 지정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귀띔한다. 그러니까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가 내 유물이라 생각하면 박물관, 문화재가 좀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조언이다. 황소장이 국립박물관에서 만났다는 그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지난 2월 24일 프랑스 행정법원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 항소장이 접수되었다. 다시 시작인 셈이다. 인터뷰를 끝낸 이후 신문을 통해 본 황소장을 비롯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에 나선 이들의 의지는 꽤나 결연하였다. 그래야 할 일이다. 1억 8천만원이 넘는 소송비를 위해서, 문화재 환수 운동의 의미를 위해서 시민들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으니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약탈된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 혹은 문화재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 무엇이 되던 외규장각 서포터즈로 활약해보는 것, 썩 유쾌하지 않을까? 한 사람당 만원씩 내면 소송지원단이 될 수 있으니, "소유권을 찾기 위해 끝까지 소송하겠다. 시민들과 함께"라고 말한 황소장의 말을 믿고 지원을 해본다면. 곧 언젠가는 외규장각 도서가 나의 유물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 외규장각 되찾기 1만 시민서포터즈 신청 사이트
http://www.culturalaction.org/heritageback/heritage_sig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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